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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눈은 어떻게 진화했나

  • 등록일2018-09-05 09:25:35.687
  • 조회수603
  • 분류HMG 소식

자동차에 어두운 곳을 비추는 헤드램프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넘는 과거의 일입니다. 아세틸렌 가스나 기름을 태워 빛을 내는, 일종의 '등불'로 시작된 헤드램프의 역사는 이후 전기 기술과 함께 꾸준하지만 느린 발전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960년대 들어 개발된 할로겐 전구는 헤드램프의 가장 큰 혁신 중 하나였지만, 최근까지 많은 자동차에 쓰이고 있을 정도니까요.

일반 조명의 흐름과 비슷하게, 헤드램프 기술의 혁신적인 변화 역시 지난 30여 년 사이에 집중되었습니다. 이전의 전구와 빛을 내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제논/HID 램프가 자동차에 쓰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고, 그 뒤로도 빛을 내는 방식이 전혀 다른 기술이 속속 등장했으니 그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사이에 등장한 헤드램프 기술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연 발광 다이오드 즉 LED(light-emitting diode)를 꼽습니다. 발광 다이오드는 전구가 아닌 반도체 소자로, 전기가 흐를 때 생기는 전기장에 특정한 물질이 반응해 빛을 내는 성질을 이용합니다. 헤드램프에 LED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데, 그건 LED가 헤드램프의 성격을 전기장치에서 전자장치로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한 글자만 다를 뿐이지만, 이는 상당히 큰 변화입니다. 아날로그식 유선전화에서 디지털 방식 무선전화로의 발전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달리 말하면, 헤드램프에 LED가 쓰이는 것은 자동차가 디지털화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더 해보겠습니다.



사실 자동차 조명에 LED가 쓰인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계기판의 숫자나 눈금을 표시하거나 버튼을 비롯한 여러 스위치의 픽토그램(그림문자)이나 글씨를 비추는 조명에 쓰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전에는 아주 작은 전구를 썼기 때문에 오래된 차 중에는 밤에 계기판이나 스위치의 일부분만 어두워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죠. 그런 부분에 할로겐 전구 대비 5배 이상의 수명을 가지는 LED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비정상적인 문제가 있거나 부품 불량이 생기지 않는 한, 스위치의 글씨 부분 조명이 꺼지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야 하는 부품인 헤드램프의 주 광원으로 LED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입니다. 그 뒤로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왔죠. LED 헤드램프는 이전까지 자동차 헤드램프의 대세였던 할로겐 전구 헤드램프와 비교해 뚜렷한 장점을 가집니다. 우선 선명하고 고른 빛을 내고, 반영구적일 정도로 수명이 깁니다. 또한, 켰을 때 필라멘트가 충분히 달궈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전구에 비하면 응답속도도 빨라서, 순식간에 필요한 만큼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빛을 내는 부분의 크기도 작아서, 다양한 형태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구를 쓸 때보다 헤드램프의 크기와 형태의 제약이 크게 줄어들죠.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LED 헤드램프의 등장을 반기는 이유기도 합니다. 전에는 불가능했던 창의적 표현이 가능하니까요.

LED가 자동차 헤드램프의 광원으로 인기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전구보다 전력소비가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요즘 자동차 개발에 있어 중요한 과제는 연료소비와 유해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전력소비가 적으면 그만큼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필요한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죠. 배터리에 충전해 둔 전기 에너지로 모터를 굴려 달리는 전기차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낭비되는 전기를 최소화해야 차가 달릴 수 있는 거리도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구와 마찬가지로 LED도 내는 빛이 밝고 강렬할수록 비쌉니다. 심지어 LED가 내는 빛의 색에 따라서도 값 차이가 나죠.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LED 중에는 파란색과 흰색 빛을 내는 것이 가장 비싼 축에 속합니다. 이는 흰색과 파란색 빛을 내도록 만드는 소재가 다른 색에 비해 비싸고, 제작 공정이 복잡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가급적 밝고 강한 흰색 빛을 내야 하는 헤드램프용 LED는 아주 비싸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LED 헤드램프는 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급차에만 쓰였고, 대중 브랜드의 차량에서는 할로겐 램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LED가 가진 수많은 장점 때문에 사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선보인 기아 스포티지 더 볼드도 풀 LED 헤드램프를 사양 혹은 옵션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상위 트림의 경우 메인 램프는 물론이고 방향지시등과 차폭등, 안개등까지 앞을 비추는 램프에 모두 LED가 쓰입니다. 앞뿐만 아니라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에도 LED가 쓰이는데 LED 라이팅 패키지를 선택해 후방 번호판등까지 LED 램프를 달게 되면 스포티지 더 볼드의 외부에 쓰인 램프 중 할로겐 전구는 뒤쪽 방향지시등과 후진등만 남는 셈입니다. 스포티지의 포지션을 생각하면 상당히 호화로운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드램프가 ADAS를 만났을 때

최근의 헤드램프는 단순히 어두운 곳을 비춘다는 개념을 넘어서, 첨단 주행보조 시스템(ADAS)의 일부로 기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인텔리전트 헤드램프, 즉 지능화된 헤드램프의 등장 덕분에 달리고 있는 차는 물론 차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물체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빛을 조절하는 기능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것이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입니다.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여러 개의 LED를 정교하게 배치하고, 배치한 LED의 일부 또는 전체의 밝기와 각도 등을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에서 개별 LED의 조절은 헤드램프 제어장치가 맡는데, 제어장치가 빛을 어떻게 조절할지 판단하고 제어하기 위해 ADAS 시스템의 도움을 받습니다. 즉 ADAS 시스템에 쓰이는 카메라나 레이더가 파악한 주변 상황, 스티어링 휠과 페달 작동 상태, 주행 속도와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도로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헤드램프를 현재 주행 상황에 가장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밤길을 달릴 때 마주오는 차가 감지되면 상대 차량 운전자의 눈이 부시지 않도록 그 부분의 빛만 줄입니다. 상대편 차나 내 차 모두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헤드램프의 빛도 차의 움직임에 따라 연속해서 조절되죠. 그런가 하면 주변에 교통표지판이나 사람이 있을 때는 운전자가 확인하기 쉽도록 그 부분만 밝게 비출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운전자는 주변을 잘 살피며 운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개별 조절되는 LED의 크기를 더 줄이고 갯수를 늘려 한층 더 세밀하게 빛을 조절할 수 있는 마이크로 적응형 전방 조명 시스템(μAFS)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신기술로는 레이저 헤드램프를 들 수 있습니다. 레이저는 흔히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가공할 무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물론 실제로도 그렇게 쓰일 수는 있습니다) 위험하다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장치에 널리 쓰이고 있을 만큼 생활의 편리함을 더하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쓰는 스캐너,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쓰는 레이저 프린터, CD 플레이어나 드라이브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레이저는 수술도구나 절단기에도 쓰이는 만큼 쓰기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 있지만, 적어도 레이저 헤드램프는 레이저를 빛을 내는 광원으로 쓸 뿐, 앞서 이야기한 장치들처럼 사람이나 물건에 바로 쏘는 것이 아니어서 위험하지 않습니다. 레이저 헤드램프가 구동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선 레이저를 만드는 장치에서 나온 레이저는 거울을 이용해 초점을 조절하고, 초점이 맞는 곳에 형광물질을 두어 필요한 색의 빛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빛은 렌즈를 통해 알맞게 퍼져 나와 차 앞을 비추죠. 즉 우리가 보는 레이저 헤드램프의 빛은 있는 그대로의 레이저는 아닌 셈입니다. 빛의 세기도 훨씬 약해지죠. 그럼에도 레이저 헤드램프의 밝기는 LED 헤드램프의 네 배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런 레이저의 특성이 레이저 헤드램프의 미래를 밝게 해 주고 있습니다. 광원이 되는 레이저 소자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작은 크기로도 충분한 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세기의 빛을 내면서도 LED를 썼을 때보다 헤드램프 크기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습니다. 헤드램프 크기가 작아지면 차의 앞모습도 크게 달라질 수 있죠. 레이저 헤드램프가 널리 쓰이게 되면 지금보다 더 독특하고 개성있는 디자인을 가진 차들이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레이저 헤드램프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직진성으로 먼 곳까지 밝게 비춰 시야를 확보하기 좋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야간 운전이 안전해지는 거죠. 상향등으로 쓰는 레이저 헤드램프가 비출 수 있는 최대 거리는 약 600미터에 이릅니다. 이는 일반적인 LED 헤드램프의 두 배 정도에 이르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이런 높은 직진성이 레이저 헤드램프를 아직 상향등 목적으로만 쓰이도록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양산차의 레이저 헤드램프는 LED를 사용하는 하향등과 함께 쓰입니다.


앞서 LED가 자동차에서 먼저 쓰인 곳이 실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계기판이나 스위치 등에 들어가는 기능성 조명으로 주로 쓰이던 LED는 최근 들어 감성적인 조명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흔히 무드 조명이라고도 하는 앰비언트 라이팅, 즉 공간 조명으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이죠. LED는 전력소모가 적고 수명이 길어 오래 켜놔도 부담이 적고, 디자인 자유도가 높아 실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지도록 만들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LED의 색과 빛의 세기에 따라 수많은 색을 조합해 낼 수 있어, 원하는 분위기에 가장 알맞는 색으로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은은한 빛이 계속 퍼져 나오는 공간 조명은 실내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로서 차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심리적 영향을 줍니다. 빛의 색과 밝기가 사람의 심리에 주는 영향은 크기 때문에 차에 탄 사람의 기분이나 취향, 이동의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죠.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 안전 운전을 돕기도 합니다. 기아자동차 더 뉴 K9에 적용된 앰비언트 라이트는 전문가가 추천한 7가지 색을 비롯해 64가지 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색으로 실내 분위기를 맞춰, 이동의 쾌적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처럼 조명 기술의 발전은 자동차의 안전은 물론 운전자와 동승자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명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더 높은 성능을 내도록 하는 '차갑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차와 함께 하는 생활을 더욱 편안하고 즐겁게 만드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방향으로도 발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글.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

출처. HMG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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